♡엄마는 살리고 봐야죠♡
"열심히 살아 빚 갚을게.." 막내아들 간 이식받은 의붓엄마의 눈물
■우리시대의 효자 김준우씨 "엄마를 살리고 봐야죠" 간경변으로 죽어가는 의붓 엄마에게 20대 후반의 아들이 간이식을 해준 사연이 뒤늦게 밝혀졌다. 13일 충남대병원에 따르면 외과병동에 입원해 있는 박순분씨(62)는 2012년 8월 18일 외과 전광식 교수의 집도로 생체간이식을 받았다. 간 공여자는 막내아들 김준우씨(31)다.
간이식 집도의였던 외과 전광식 교수는 "박씨가 C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으로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고 이식 수술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의붓 엄마에게 이식 간을 제공한 김준우씨가 지난 10일 충남대병원 외과 병실에서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입원한 어머니 박순분씨를 감싸안고 있다. 아들의 콧등이 시큰해진 모습이다.
준우씨는 박씨의 친아들이 아니다. 박씨는 어릴 때 아버지의 재혼으로 들어온 새엄마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엄마에게 하나밖에 없는 간을 자청해서 제공했다. 자식으로서 더 이상 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모사랑에 대해 주변에서는 '심청이 못지 않은 효자'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사연은 아들의 간을 이식받은 박씨가 쇠약증과 대상포진 후유증 등으로 병원에 가끔 입원을 하면서 더 알려지게 됐다. 간은 재생력이 뛰어나다. 건강한 상태라면 60~70%를 잘라내도 다시 재생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간을 떼어준다는 것은 부모자식간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간이식이 100% 성공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간 공여자가 다시 원래의 건강을 회복하려면 1년 정도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생체 장기기증이다. 요즘 친 부모자식간에도 흉칙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태에서 보기드문 미담을 접한 기자는 지난 10일 밤, 박씨가 입원해 있는 충남대병원 555호실을 찾았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러 준우씨도 회사를 마치고 현재 살고 있는 안양에서 차를 몰고 내려왔다. 병상의 엄마는 막내아들의 품에 안겨 눈시울을 붉혔다. 친엄마도 아닌데 간을 4분의 3이나 떼어준 아들이다. 그의 배를 보니 명치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30㎝ 정도 제이(J)자 흉터가 나 있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초등학교 때 새엄마 만나 둘의 인연은 2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살 때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 김흥조씨(57)와 단둘이 살고 있던 준우씨는 1990년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박씨를 만났다. 대전에서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 아버지는 주변의 소개로 대전에 거주하는 이혼녀 박씨와 3년전쯤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박씨는 키우던 두 아들(당시 16세와 15세)을 데리고 왔다. 5년 연하의 남편과 새 가정을 꾸리고 세 아들을 키우며 큰 걱정없이 살던 박씨에게 10년전쯤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몸이 약한 편이었지만 큰 병치레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인가부터 몸이 점점 안좋아지더니 급기야 피를 토하며(토혈) 쓰러진 것이다. 병원에 실려온 박씨는 C형간염으로 인해 간경변증(간경화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시로 병원을 오가며 약과 주사치료를 받으며 그나마 버텨오던 박씨에게 또 한번의 병마가 찾아왔다. 2009년 폐암이 발병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 수술을 받았으나 폐암 진단 2~3년 전부터 간의 상태가 나빠져 수술 후 항암치료도 못했다. 수술이 잘돼 아직까지 괜찮지만 재발 위험성이 높은 부위라 매년 2~3차례 정밀검사를 받아왔다. 박씨는 2012년 들어 간경화가 더욱 심해져 얼굴이 새카맣게 변하고, 수족에 통증이 심해 걷거나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약물치료와 주사에 의존하는 것이 더이상 어려워지고 정신을 잃고 혼수에 빠져 입원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간이식이 필요했지만 경제적인 사정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해 7월 또 쓰러져 충남대병원에서 입원한 박씨는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얼마 못산다는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그대로 죽겠다고 버텼으나 남편과 세 아들의 간청에 따라 간이식을 받기로 했다. 막내인 준우씨의 간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검사결과가 나왔다.
전광식 교수팀은 박씨의 간을 다 떼어내고 준우씨의 간 75%(오른쪽 부위)를 잘라 박씨에게 이식했다. 간이식은 성공했지만 간이 얼마 안남은 아들은 회복하느라 상당한 고생을 했다. 간은 잘라내도 3개월 정도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자라난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들의 간을 이식받고 깨어난 박씨가 "고맙다. 열심히 살아서 빚 갚을게…"라고 하자 준우씨는 "아프지나 마"라며 웃었다.
■간이식 외 살길 없는 의붓엄마에게 간이식 자청 전 교수는 당시에 "정말 하겠느냐?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려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준우씨에게 재차 물었다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살리고 봐야죠"라며 빨리 이식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전 교수는 "친아들이 아닌 것을 그 때 알고 있었다. 낳아준 정이나 기른 정이나 같은 것이라지만 준우씨는 친엄마에게도 하기 힘든 일을 한 대견한 청년"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이번에 충남대병원에 입원한 것은 대상포진 후유증 때문이다. 간 이식 후 퇴원하고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다. 치료는 했지만 몸이 안좋아지면 통증이 심해져 버틸 수가 없다. 입원이 벌써 4번째다. 준우씨는 현재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며 컴퓨터 관련 업체에 다니고 있다. 2012년 8월 간 이식 당시에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사 일을 했다. 어릴 때부터 손에서 책이 떨어질 날이 없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했다. 책을 끼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2001년 한남대 법대에 입학해 국가 장학금을 전액 받았지만 책값과 엄마 약값 등에 보태느라 돈을 벌어야만 했다. 2년 휴학하고 군대(의경 제대) 갔다오느라 2009년에야 졸업했다. 그해 강서 농협공판장에서 경매사 보조로 들어가 무계약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2010년 경매사 자격증을 취득, 농산물 경매보조(계약직)가 됐다. 2011년 3월 가락동시장에 있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사무 및 영업 일을 했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경매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부터 포항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작은 형을 도와주다가 10월 지금의 회사에 들어갔다.
죽어가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간을 75%나 떼어준 막내아들 김준우씨의 얼굴을 박순분씨가 보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세 아들을 키우느라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사는 게 많이 힘들고 어려워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특히 청소년기에 엄마와 많이 싸웠어요.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몸도 많이 아프셨고요. (간이식을)어머니인데 어떻게 안해드릴 수 있겠어요?
겁은 좀 났지만 당연한 도리로 생각했고요. 빨리 하는 게 좋다고 하니까,
제 간이 맞는다고 하니까 드린 거죠."
■"올해 결혼해서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준우씨의 아버지는 아내가 간이식을 받았던 그해에 사기사건에 연루돼 1년 4개월째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박씨가 퇴원하기 하루 전날 경찰에 연행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이달 중에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심장수술까지 받은 몸으로 당뇨와 담석증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내의 치료비를 대느라 동분서주했다. 천정부지로 들어가는 아내의 수술비와 병원비, 약값 등을 마련하느라 유혹에 넘어간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같이 구속된 사람들은 집행유예로 모두 풀려났지만 전에 비슷한 사건에 연루됐던 누범이라는 이유로 가중 처벌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박씨는 "남편이 뭔 일을 했는 지 모르지만 내 병원비 때문에 그런것 같다"며 "나 때문에 재산도 다 날리고…, 내가 죽었으면 교도소도 안갔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배다른 세 형제가 사이좋게 커서 행복했어요. 이제 큰 아들과 막내가 좋은 배필 만나서 결혼하고 안정되게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준우 아빠가 빨리 (교도소에서)나오기를 바랄 뿐이고요. 사실 준우에게 특별히 더 잘해 준 것도 없어요." 박씨가 낳은 큰 아들(40)은 대전에 같이 산다. 신체가 쇠약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포항에 사는 둘째(39)는 결혼을 했고 개인 사업을 한다. 준우씨는 "아직 애인은 없지만 올해 결혼을 하고 싶다"면서 "부모님이 그나마 건강하실 때 장가를 가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