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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석부작 / 秋史適居地

왕자별 2008. 6. 16. 21:36

자란과 돌양지꽃도 보이고...

 

자란과 구절초 패랭이도 보이고...

 

구절초...

 

바위채송화와 매발톱...

 

세뿔석위와 바위채송화...

 

비비추와 고사리...

 

풍로초와 물레나물, 기린초...

 

세덤...

 

세덤...

 

자란과 구절초...

 

백리향과 꿀풀...

 

 

자란과 도라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2856)는 제주 문화에 영향을 끼친 대표 적인 인물이다.

추사는 영조의 사위였던 윌성위 김한신의 증손으로, 당시 승승장구하던 경주 김씨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북학파의 대가인 박제가의 학문을 전수 받았으며 24세에 생원 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병조참판인 부친 김노경을 따라 외교사절단으로 북경에 건너가 중국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해동 제일의 통유'(海東第一通濡)로 이름을 날렸다.

34세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규장각을 거쳤고, 이후 충청도 암행어사, 성균관 대사성, 공조참판, 형조참판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다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중국행을 앞 두고서 추사는 안동 김씨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목숨만 가까스로 건진 채 제주도로 유배되는 처지가 되었다.

대정읍성 동문 바로 안쪽에 그가 제주도에서 6개월간 유배생활을 한 초가가 있는데, 바로 추사적거지(秋史適居地)이다.

추사의 글씨와 그림 등이 전시돼 있고, 초가는 주인댁이 살았던 안거리 (안채), 사랑채인 밖거리(바깥채), 그리고 모퉁이 한쪽에 세운 모거리(별채), 제주식 화장실인 통시와 대문간, 방앗간, 정낭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념관 쪽으로 정낭 하나가 따로 더 마련되어 있지만,이 집의 본래 정낭은 방앗간과 모거리 사이의 대문간에 있는 것이다.
추사는 밖거리에서 배움을 청해오는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한편, 모거리의 작은 방에 기거하며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세한 도(歲寒圖)]을 비롯한 여러 점의 서화를 남겼다.

추사적거지의 정원에 가면 지인께서 기증했다는 야생화 석부작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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