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다. 비문에는
"矗石義 妓論介生長鄕竪名碑"라고 씌어 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論介祭典)을
열고 있다. 고 두산 백과사전에서 알려준다.
丹 娥 亭 (단아정) -
이곳은 의암 주논개가 어릴적 또래들과 노닐던 곳으로
이른 봄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산새들의 고운
노래소리가 주촌골의 메아리를 불러 모은 곳이다.
이곳에 의랑(義娘)의 충절을 표상하기 위하여 정자를
세우고 「단아정」이라 이름하였다. 단(丹)은 애국단충
(愛國丹忠)의 뜻이요, 아(娥)는 달속의 선녀 항아(姮娥)를
일컬음 이니 의랑의 단충과 효행이 항아보다 더 아름다운
논개의 지극한 충성과 효심의 얼을 상징함이다.
그 어찌 그 위대한 충절의 넋을 다 이르리오 !
이 거룩한 얼을 기리기 위하여 제 12대 전두화 대통령이
지난 1986년에 생가를 복원하게 하였고, 오늘에는
이 정자에 단아정(丹娥亭)이란 친필을 남겨 그 뜻을
기리고자 하였으니, 그 얼이 높이 선양 되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 헉...여기까지 친필을..
논개의 일생 - 1574년 9월 3일 4갑술의 특이한 사주를 가지고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에서 탄생. 5세때 부친 주달문 사망후, 모녀는 한 마을에 사는 숙부 주달무 집에 의탁되고. 숙부는 어린 조카를 김풍헌 집에 민며느리로 보낸다는 약조를 하고 금품을 받아 달아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논개를 데리고 친정으로 피했다가 체포되어 장수관아에 수감된다. 6세때 이른봄, 장수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이 열림.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돌아갈 곳이 없는 모녀는 침방관비를 자청. 김씨 부인의 배려로 내아에서 심부름을 하며 살게 된다. 늦가을, 모녀는 무장현감으로 전직된 최경회를 따라간다. 9세때 최경회가 영암군수로 전직되어 그를 따라간다. ▶▷≫
14세때 최경회가 사도시정으로 갈 때 수행을 하고, 17세 되어 초경회의 부실이 된다. 최경회가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 화순으로 갈 때 논개는 고향 장수로 와 기다리며 살아간다. 19세때 최경회가 전라우도 의병장으로서 장수로 와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시킬 때, 논개는 의병 훈련 뒷바라지을 한다. 20세때에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2차 진주성 전투를 할때 논개는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하였는데,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한 뒤,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의암으로 유인하여 남강에 투신 순절하는 일생을 살 게된 것이다.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同時)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중략-
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주논개 부모 묘소 -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주촌 마을은 주논개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오른쪽 능선에 주논개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가 있다. 주논개는 의로운 죽음으로 태산보다 큰 뜻을 세웠으나 후손이 없어 부모님의 묘소를 돌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장수 군민들은 신안주씨 중앙종친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1999년 12월 17일 갑자(甲子)로 체백(體魄)하고 2000년 5월 5일 봉분을 지었다. 이제 탯자리를 찾아 곁으로 돌아온 딸 논개와 함께 편안하게 영면 하길 바란다. - 장 수 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