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

"수덕사의 여승"에 얽힌 일화

왕자별 2014. 10. 28. 14:46

 

"수덕사의 여승"에 얽힌 일화

김일엽의 본명은 “김원주” 다. 

일엽(一葉) 이란 필명은 춘원 이광수가
그녀의 아름다운 필체에 반해 지어준 이름이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때,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세분이 있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로 불리는“사의 찬미”로
 너무나 유명한 윤심덕이 그 한명이요,
또 한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며
문장가인 나혜석이 그 한명이고,
나머지 한명은 시인으로 유명한 김일엽이다. 

 


이 신여성 세 사람은 조선사회 남존여비의 실체가
그대로 존재했던 시기에 시대의 요구를 단 호히 거부하고
불꽃처럼 살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여인들이다.

나혜석은 사랑에 버림을 받고
윤심덕은 현해탄에서 사랑과 함께 했으며,
김일엽은 스스로 사랑을 버린 여자다.  

윤심덕과 나혜석의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더 하기로 하고
여기선 실제로 수덕사의 여승이었으며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으로 추앙받는 김일엽의 이야기를 해보자.

 


김일엽의 본명은 “김원주” 다.
 당시 모든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그녀도 극심했던 남존여비라는 잘못된
인습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몸소 겪었다. 

부모의 중매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데
남자가 의족을 한 장애인 이었다.
남자가 이 사실을 숨겼으므로 지금이라면 사기 결혼을 당한 셈이다.
신뢰에 기반 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일찌감치 청산하고
한국최초 여자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유학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일본인 “오다 세이 조”와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오다 세이조는 아버지를 은행총재로 둔 일본최고
명문가의 아들이며 당시 규수제국대학생이 였다.
남자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데, 이때 둘 사이에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이 아들은 아버지 친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자라나게 되며
이 사람이 한국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동양화가
일당스님이며 이름이 “김태신”이다.

일당스님은 지금도 김천의 직지사에서 활동 중이며 해방직후
김일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김일성 종합대학에
지금도 걸려있다 한다.
당시 그 일로해서 조총련계로 오해받아 작품 활동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오다 세이조와의 사랑도 아픔으로 겪은
그녀는 곧, 일본에서 돌아와 수덕사의 여승이 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이 세파에 으스러지는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른 참 인생의 행로를 불자의 길로 선택한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린 아들이
수덕사를 찾아 왔는데 불자가 되였으니,
“속세에 맺어진 너와나의 모자인연은 속세에서 끝났으므로
더 이상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하며 모질게도
모자의 정을 끊고자 이역만리 찾아온 어린자식을
절 밖에 재웠다 한다. 

 


이때 김일엽의 절친한 친구인 나혜석이
수덕사 밖에 있는 수덕여관에서 같이 지내며
어머니 처럼 자신의 젖가슴도
만져보게 하고 그림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가슴에 쌓여 해탈로 녹아내렸을까?

수덕여관
비구니로써 그의 인생이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길 만큼
성공적인 것은 우연이 절대 아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가 60년대이니
이때엔 일엽스님께서 수덕사에 살아 계실 때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노랫말을 쓴이가 일엽스님의 인생을 안다면 아마도
그런 가사가 나왔음 직 하지 않은가.

이 글에 인용된 사실적 기록들은 일엽 스님의
아들 일당스님(김태신)이 최근 발표한 자전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에서
 발췌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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