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담긴방

신부(新婦)

왕자별 2017. 8. 15. 17:00

 

 

 

신부(新婦)
                    - 詩 : 서정주 -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郞하고 첫날밤에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면서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 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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